빽판의 전성시대 ⑧ 대호황의 빽판 시장 – 바카라, 보니 M

작성자
바카라
작성일
2020-11-18 15:05
조회
2
[편집자 주] 팝송의 국내 유입 역사는 바로 ‘빽판’의 역사다.
대중문화의 흑역사에서 찾은 빽판의 기록을 담은 《빽판의 전성시대》(스코어 刊)가 출판되었다. 《한국일보》 기자 출신의 대중음악평론가 최규성씨가 책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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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규성씨가 펴낸 《빽판의 전성시대》(스코어 刊)
‘빽판’은 음반 판권 소유자와 라이선스(사용권) 계약 없이 불법으로 제작해 유통시킨 해적 음반을 지칭한다. 원하는 음악을 마음껏 들을 수 있는 지금과 달리, 그때는 국외 음악 중에서 국내 음반사와 계약해 들어오는 라이선스 음반이 한정되어 있었기에 음반 수입이 전혀 없었던 1960년대엔 지상파 라디오에서도 빽판을 이용했다.

《월간조선》은 1950년대부터 LP시대를 마감한 1990년대까지의 빽판의 역사를 10회에 걸쳐 소개한다. 일부 내용과 사진은 편집자가 추가했음을 밝혀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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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대에 접어들면서 빽판은 국내 음반시장의 60%를 점령할 정도로 비대해졌다. 이에 문공부는 1972년 2월 28일 음반법 시행유예 기간이 끝나자 건전가요 제정 및 선전 보급을 위한 개창 운동사업 계획을 발표하며 5개의 빽판 녹음업체들에 대해 단속을 시작했다.

빽판의 제작과 유통을 규제하기 위해 제정된 음반법은 아이러니하게도 빽판의 전성시대를 불러왔다. 근절은 고사하고 제작사 표기도 없이 조악하게 제작된 빽판들은 라이선스와는 비교도 되지 않는 저렴한 가격으로 시장의 몸집을 더욱 키웠다.

1975년에 라이선스 음반가격은 1300~1500원이었고, 1978년에 빽판 가격은 300~500원에 불과했다. 60년대에 빽판 제작을 주도했던 정식 음반사들의 고급스런 디자인과는 달리 영세제작자들이 제작을 주도했던 70년대는 질과 종류에서 퇴보 경향이 선명했다.

그럼에도 빽판의 인기가 더욱 높아진 것은 저렴한 가격과 더불어 금지곡의 존재를 무시할 수 없다. 중요 노래들이 금지처분을 받으면 라이선스 음반에서 인정사정 볼 것 없이 빠졌다. 반면 빽판에는 금지곡들이 들어 있어 날개 달린 듯 팔려나갔다.

국내 1호 라이선스 음반

1969년부터 일본 레이블들을 통해 라이선스 음반을 연구했던 성음제작소는 1971년 국내 1호 라이선스 음반을 발매했다. 정경화가 앙드레 프레빈이 지휘한 런던 심포니 오케스트라와 협연한 《차이콥스키/시벨리우스(Tchaikovsky/Sibelius) Violin Concertos》 음반이다.

그동안 1970년 데카에서 제작하고 1971년 성음에서 발매한 정경화의 연주모습이 담긴 음반을 1호 음반으로 생각하는 사람이 많았다. 그런데 1971년 같은 레퍼토리를 일본 런던레코드에서 발매한 바이올린을 든 정경화 의 상반신 사진 재킷이 당시의 언론기사를 통해 필립스 계열사 데카(DECCA) 로고를 달고 먼저 발매된 것으로 확인되었다.

이 음반은 현재 실물구경이 힘든 상태이다. 1호 라이선스 음반은 당시 1000 원 대의 높은 가격에도 불구하고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비슷한 시기에 발매된 팝 음반 1호는 인터내셔널 로고의 《플레터스 골든히트》와 필립스 로고를 단 《티주아니 고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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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카라 빽판

100만 장 대박 빽판

1960년대에도 히트 빽판들이 수없이 많았지만 전축보급률이 미미해 판매에 한계가 있었다. 1970년대 들어 경제사정의 호전과 더불어 전축과 TV 수상기 보급이 급증했다. 이에 "100만 장이 팔렸다"는 입소문을 탄 대박음반들이 속출했다. 당시는 정확한 음반판매 숫자를 집계하지 않았기에 단정하기는 어렵지만, 전축이 있는 가정마다 이 음반들을 보유했던 것을 기억하면 근거 없는 소문만은 아니다. 대박음반으로 소문난 빽판들은 대부분 1970년대 중반 이후 등장해 1980년대 초반까지 대유행 했던 디스코 댄스장르가 중심을 이룬다.

스페인 여성듀오 바카라(Baccara)는 엄격한 규율과 숨 막히는 입시지옥에 시달렸던 1970년대 남학생들에겐 잊지 못할 기억으로 남아 있다. 1977년 길거리 전파상과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Yes Sir, I Can Boogie’는 충격이었다. 보수적인 당시에 이 노래가 어떻게 금지되지 않았는지 의아할 정도로 관능적인 팝송이었다.

여가수의 신음소리가 흘러나오는 노래를 듣고 있자면 얼굴이 벌겋게 달아오르고 호흡이 가빠졌다. 김보연이 ‘오 그대’, 바니걸스가 ‘오 사랑’으로 번안한 이 노래는 바카라 열풍을 불러왔다. 바니걸스는 ‘Sorry I Am A Lady’도 ‘빨간장미’로 번안해 빅히트를 터트렸다. ‘Granada,’는 안이영이 ‘사랑은 다시는’으로 번안했다. 바카라의 백판은 버전 확인이 힘들 정도로 선풍적으로 팔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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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니 엠 빽판

동아줄을 타고 우주로 올라가는 커버 사진이 환상적인 보니엠( Boney M)의 음반은 100만장 판매소문에 걸맞게 무수한 빽판으로 제작되었다. 심지어 하얀 배경의 커버에 빽판이 라는 도장을 찍은 변형 재킷까지 발견되 었다. ‘Brown Girl In The Ring’, ‘Rasputin’, ‘Painter Man’과 더불어, 1972년 발표된 더 멜로디언즈의 곡을 커버한 ‘Rivers Of .Babylon’은 여름의 낭만이 가득한 노랫말 로 한국인의 무한 사랑을 받았다.

‘Rivers Of Babylon’은 들고양이들이 ‘강변에서’, 월계수자매는 ‘바빌론의 강가에서’로 번안했다. 또한 첫 소절 ‘By The Rivers Of Babylon~’이 ‘다들 이불개고 밥 먹어~’로 코믹하게 개사되어 유행했고, 같은 부분을 ‘롯데의 강민호~’로 개사해 프로야구 선수의 응원가로도 사용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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